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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생각이 걸어온 길, 책

함민복 | 2016.08.03 10:19 | 조회 3797




인류의 생각이 걸어온 길, 책


  전철을 타고 가며 지나간 광고 카피를 떠올려 보았다. ‘이 손 안에 있소이다!’ 무슨 광고였더라. 어떤 드링크제 광고 같았었는데….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친구에게 검색해 보라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며 옆 좌석을 흘끔거렸다. 대다수의 승객들 손바닥에 납작한 쇠붙이가 들려져 있었다. 쇠붙이에서 가늘게 뻗어 나온 두 가닥 줄이 사람들 귀속으로 파고들어가 있었다. 사람들은 쇠붙이를 한 손으로 받들고, 남은 한 손의 손가락으로 쇠붙이 표면을 밀거나 두들겨 댔다. 쇠붙이가 반응을 보이는지, 사람들은 혼자 웃기도 하고 발로 장단을 맞추기도 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풍경이다. 그때는 사람들 손에 대부분 책이나 신문이 들려져  있었다. 전철을 타고 어딘가를 갈 때면 사람들이 읽고 있는 책을 보고 그 사람의 직업이라든가 관심사를 짐작해 보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보기도 했었다.

   ‘감기 몸살쯤이야 이 손 안에 있소이다.’라는 한방 감기약 광고 카피였다고, 오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친구가 전화를 걸어 왔다.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스마트폰을 쥐는 순간 누구나 한 곳에 앉아서도 세상을 훤히 다 들여다보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스마트 폰으로 날씨를 내다보고 음악을 듣고 주위의 맛집을 찾고 먼 브라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월드컵을 관람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지나가고 있는 지도상의 현 위치를 파악하기도 한다. 어찌 그뿐인가. 바람에 날리지 않는 책장을 펼쳐 놓고 책을 읽는 사람들도 더러 보이지 않던가. 종이책이 잘 팔리지 않아 절대 불황을 겪고 있다는 출판인들의 볼멘 목소리에 수긍이 가고도 남을 만한 풍경을 전철 안은 보여주고 있었다.

 

  ‘극동의 모든 국가들에서 우리가 경탄하지 않을 수 없고 동시에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집 안에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극동의 나라들에서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며 또 글을 읽지 못하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는다. 만일 문맹자들에 대한 그토록 신랄한 비난을 프랑스에 적용시킨다면 프랑스에는 멸시 받아야 할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병인양요(1866) 때의 참전기록인『프랑스 군인 쥐베르가 기록한 병인양요』를 보면, 프랑스 장교 쥐베르는 집집마다 책이 있는 우리를 몹시 부러워했다.

 

  나는 외규장각의궤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보았다. 전시된 책들을 보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놋쇠물림(경첩)과 놋쇠문고리 달린 책은 가히 충격이었다. 그리 품위 있고 격조 있는 책을 나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비단으로 된 책표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책의 문고리를 당기면 마치 조선시대로 들어갈 수 있을 것처럼 책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프랑스군이 정족산성 전투에서 양헌수 장군에 패하고 다음날 도주하면서, 왜 다른 것도 아닌 책을, 외규장각의궤를 챙겨 갔을까에 대한 의문이 책을 보는 순간 풀어지고 있었다. 전시실을 나서며 외규장각의궤의 존재를 밝혀내고 이를 조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남은 생을 뜨겁게 살았던 박병선 박사의《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외에, 이와 관련된 서너 권의 책을 샀었다.


 

  후에,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의궤’라는 특별전이 강화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강화합창단에서도 축하공연을 준비한다며, 창작곡에 쓰일 노래 가사를 써 달라고 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아래와 같은 노래 가사를 썼었다.


<외규장각도서를 보며>


1. 그리움 

쓰지 않아도 써지는 문자가 있네 

그리지 않아도 그려지는 그림이 있네

마음의 붓 쥐고 있는 이 누구인가

지우면 지울수록 선명해지는 그리움은

바람인가 세월인가 누구-누구인가

이 마음 눈물 찍어 넘겨주는 이

그토록 만나고 싶은 이 누구-누구인가


2. 책

이-곳 저-곳 이 사람 저 사람

사람들 가슴은 펼쳐진 책을 닮았네

사랑과 희망 그리고 그리움에 목말라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몸짓 아름다워라

광활하게 펼쳐진 땅과 하늘이란 책 사이 

강물처럼 한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서로를 읽으며 서로를 써가는 사람책


3. 길 

길을 걸으면 과거도 미래도 함께 걸어가네

오늘은 어제와 내일을 껴안고 가는 시간의 다리 

출렁출렁 바닷길로 갔다가 하늘길로 돌아왔네

서러운 몸으로 떠났다가 반가운 마음으로 돌아왔네

바다 비린 울음소리 이젠 드높은 산의 웃음소리

길이여 서러움 떨치고 일어서는 한반도의 길이여

여기 역사의 맹세로 돌아온 외규장각도서여

 

  요즘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책을 너무 안 읽는다고 한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시시각각 전해져오는 인터넷 매체의 정보에 중독되어, 인터넷을 통한 잡다한 지식을 접하며 책 읽는데 투자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특정 시간에 만나는 게 뉴스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수시로 그리고 어디서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상 모든 일들을 인터넷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뉴스는 없다. 모든 것이 다 연속성을 가지고 인터넷을 통해 중계되고 있을 뿐이다. 뉴스가 아니라 중계방송만 넘쳐나는 세상이다. 중계방송의 실시간 유혹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서 책이 점점 멀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의 생각이 걸어온 길인 책의 역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작금에 우리가 책을 멀리 하고 있다 해도 언젠가는 다시 책이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책은 우리가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책들이 책을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책은 책을 또 읽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런 세상이 빨리 돌아와, 책처럼 펼쳐진 눈 내린 기왓장을 보며 책에 대한 근사한 노래가사를 써보고 싶다. 사람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이 사람을 읽어주는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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